카테고리 없음

아내 판매 3 From a Sold Wife to Duchess

진정성을 가지고 2025. 2. 20. 09:27
반응형
아내 판매 3
From a Sold Wife to Duchess
팔려 간 아내의 등극?
어떤 연고로 팔자를 고쳤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거꾸로 병자호란 이후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에게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했던 것이 우리다. 일제 치하에서 위안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심지어 네덜란드 출신이었다. 병사는 10시-15시, 1.5엔, 부사관은 15시-17시 3엔, 장교는 21시~자정 5엔, 한밤 꼬박이면 20엔이었다. 인간은 누구도 남의 위나 아래가 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다.
1744년 부친이 사망하자 2대 '챈도스(Chandos)' 공작이 된, '헨리 브리지스(Henry Brydges, 1708~1771)'는 부친의 빚을 떠안았고 낭비가 심했다. 재산은 고갈되어 3년 만에 재산을 매각했다. 가재 도구와 집 기둥, 입구 대문, 계단 건물 장식재도 각각 박물관(National Gallary), 대학(New College Oxford), 다른 저택(Chesterfield House)에 매각했다. 현장에 남겨진 포틀랜드 석재 일부는 1760년 현장에 시골집을 지은 William Hallett에게 매각되었고 후일 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에 통합되었다. 첫 번째 결혼은 1728년, 20세에 Elgin 4대 백작 집안 딸인 'Lady Mary Bruce(1710–1738)'와 결혼했고 1남 1녀를 두었다.
두 번째 결혼은 파격적이었다. 여관 주인에게서 구입한 '앤 웰스(Anne Wells, 1709-1959)'였다. 인격과 성격이 매우 안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Newbury의 John Wells의 딸로 '펠리컨 여관(Pelican Inn' 하녀로 일하며 '오슬러 제프리(Ostler Jeffries)와 결혼했다. 병들은 남편의 폭행이 잦아 상처를 많이 받았다. 공작이 런던으로 가던 중 이 여관에서 식사하고 나서 소란을 목격했다. 여관 주인이 아내를 목줄로 묶어 마당의 탁자에 올려 경매에 붙였다. 공작이 반 크라운(Half Crown, 2.6 실링 또는 8분의 1 파운드 가치의 은화, 현재 가치 환산 2,600원)에 사서 데려와 보호자로서 교육도 했고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전 남편이 1744년 사망하자 그해 12월 25일 공작 나이 36세로 '메이페어(Mayfair)에 있는 '키이스(Keith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했다. 하녀가 공작 부인(Duchess)이 된 것이다. 남성 편력 없이 50세로 사망하자 남편은 8년 후 John Major 경의 딸인 Elizabeth Major(1731–1813)와 세 번째로 결혼했다. 전래 동화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이 뮤지컬 공연으로 태어나 신데렐라? 참 인간들의 심보는 묘하다.
참고:
웨스트민스터 학교와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 졸업. 1727년~1734년 헤리퍼드(Hereford) 의원, 1734년~1741년 스테이닝(Steyning) 의원, 1741년~1744년까지 비숍성(Bishop's Castle) 의원. 당시 영국 화폐 단위는 1 기니(guinea)= 21실링(shilling), 1파운드(pound)= 4크라운(crown)=20실링(shilling)=240펜스(pence), 1크라운(crown)=5실링(shilling)=60펜스(pence), 1실링(shilling)=12펜스(penc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