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주역의 독법은 철저하리 만큼 관계론 적입니다. 효와 그 효가처한 자리와의 관계, 효와 효의 관계 즉 응 과 비, 그리고 괘와 괘의 관계 등 관계가 판단과 해석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개별적 존재의 의미는 오히려 부차적일 정도로 매우 왜소합니다. 개별적 존재의 의미와 역할은 그것이 맺고있는 관계망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고 사후에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주역의 이러한 관계론적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 되었는가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는 것도 사살입니다. 공자학파의 철학적 성과라고 설명되기도 합니다. 공자학파가 십익을 이루어놓음으로써 복서미신의 책이 비로소 철학적 내용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장의 서두에서 이야기 했습니다만, 점은 상이나 명처럼 이미 결정되어 있는 운명을 엿보려는 것이 아니라 의난을 당하여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이 복서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체계입니다. 그것역시 사물과 변화에 대한 판단 형식의 일종이며 그런점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띠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역 사상에 담겨있는 관계론의 철학적 내용을 특정학파의 철학적 성과라고 할 수 없는 것 이지요.
주역은 사회 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공간 사상이며 사계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 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 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1년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극지나 반대로 상하의 열대 지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상입에 틀림없습니다. 주역은 변화에 관한 사상이고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관계론적 철학사상이 이러한 사회 역사적 지반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어느 천재의 창작인 경우는 없습니다. 어느 천재 사상가가 집대성 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상이란 장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경험의 총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 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과 주나라의 문화사상은 이후 중국 문화와 동양적 사고의 기본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 이라 하였습니다. 죽간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록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제 대성괘를 예시 문안으로 읽겠습니다. 그 구성이 어떤지, 그리고 단전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 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천태 地 天 泰
64개 대성괘 중에서 몇가지만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중 한 개의 괘는 경經 과 전傳을 온전하게 다 읽어보겠습니다. 주역의 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괘는 핵심적인 의미만을 읽기로 하겠습니다. 주역의 효사, 상전의 해설은 주로 왕필의 주를 참조하고 주자본의 풀이도 참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먼저 지천태 괘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지천태괘를 그려보십시오. 천 위에 지를 올려놓은 모양이고, 괘의 이름은 태입니다. 이제 이 태괘의 경과 전을 모두 소개합니다. 먼저 괘사입니다. 이 괘사는 물론 경입니다.
泰 小住大來 吉亨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온다. 길하고 형통하다.
단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은 판단한다는 뜻이며 단전은 물론 경이 아닙니다. 전입니다.
단에 이르기를 태괘는 작은 것이 가고 큼것이 오기 때문에 길하고 형통하다. 이것은 천지가 만나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하가 만나고 그 뜻이 같다. 내괘는 양이고 외괘는 음이다. 안은 강건하고 비깥은 유순하다. 군자가 안에 있고 소인이 바깥에 있다. 군자의 도는 장성하고, 소인의 도는 소멸한다.
주역의 풀이에서 대는 양을 의미하고 소는 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함의는 얼마든지 달리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상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태평하다. 왕자는 이 괘를 보고 천지의 도에 천지의 마땅함을 보태어 대성하게 하고 인민을 태평하게 인도해야 한다.
태괘는 주역 64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라고 합니다.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이 화합하여 서로 교통하는 괘입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은 물론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자연의 형상과는 역전된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태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입니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입니다. 다음에서 문안인 천지비괘는 이와 정 반대의 의미입니다. 지천태괘는 역지사지와 같은 의미입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 하라는 금언이 바로 이 태괘의 사상입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역지사지가 태화의 근본입니다.
경복궁에 가본 사람은 기억할 것입니다. 교태전이 있습니다. 중전마마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흔히 중전이 교태를 부려 임금과 침소에 드는 곳 이라고 오해 합니다만, 경복궁 교태전은 바로 주역의 지천태괘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천지교태입니다. 천과 지가 서로 교통하여 태평하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지가 뒤바뀐 모양을 태화의 의미로 풀이하는 까닥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주나라는 이미 이야기 했듯이 쿠데타로 건국된 나라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천태괘를 태화의 괘로 풀이하는 것은 역성혁명을 합리화 하기위한 풀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혁명의 괘로 풀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태화의 근본임에 틀림없습니다. 혁명은 한 사회의 억압구조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한 역량을 해방하고 재갈물린 목소리를 열어줍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잠재적인 역량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흔히 혼란과 파괴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여러분은 지천태라는 뒤집힌 형국, 즉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태화의 근본일수 있을까 다소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을 치루지 않은 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을 치루지 않은 사회가 두고두고 엄청남 비용을 치르고 있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그 현장 이기도 합니다. 지천태괘를 이러한 혁명의 관점으로 읽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효사를 그런 관점에서 읽어보도록 합시다. 한 개인의 일생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도 좋고 전위조직의 건설과 개혁의 전개과정을 상정하고 읽는것도 좋습니다.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일반적 의미로 읽어도 좋습니다.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
띠풀을 뽑듯이 떨기로 가야 길하다는 뜻입니다. 띠풀을 잔디나 고구마처럼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풀입니다. 한 포기를 뽑으려 하면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함께 뽑힙니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창건이든, 회사 설립이든, 또는 전위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를 결집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부모형제와 함께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띠풀을 뽑듯이 함께 나아감이 길한 까닥은 뜻이 밖에 있음이다.
리것은 효를 부연해서 설명하는 소상 즉 전입니다. 발모정길의 까닭은, 즉 띠풀을 뽑듯리 가야 길하다는 의미는 그 뜻하는 바가 바깥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뜻하는 바가 바깥에 있다는 것은 사사로운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자기집단의 이기주의를 벗어나서 대의와 정의를 목표로 함아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도 같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멀리있는 사람도 포용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사람도 포용하고, 멀리 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붕당이 없으면 중도를 행함에 짝을 얻으리라.
제2효인 이 효는 시간적으로 아직도 초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세를 계속해서 불려 나가야 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제2효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 오랑캐 족속을 포섭해서 맨몸으로 항하를 건너간다. 먼 데 남아있는 사람까지 버리지 않고, 친구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으면 중용의 덕행을 숭상함으로서 그를 얻는다는 해석도 나와 있습니다.
제2효의 의미는 다음의 소상에서 풀이하고 있듯이 그 뜻을 널리 천명하고, 그 세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가 기본입니다. 따라서 오랑캐에 국한하기보다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받아들이며, 황하를 맨몸으로 건너듯이 초기 단계에서 흔히 요구되는 과단성도 잃지 말아야 하고, 남아있는 사람 즉 붕당이 없어야 한다, 곧 항상 중용의 정도를 행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생각 됩니다.
거친 것을 포용하고 중도를 행함에 짝을 얻음으로서 광대하게 한다.
제2효를 풀이하는 소상입니다. 이광야대의 의미는 그것으로서 빛내고 크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그렇게 함으로서 목적을 널리 알리고 그 조직을 확대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라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제3효는 하괘의 상효입니다. 한 단계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무평불피 무왕불복은 어려움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번 겪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는 그에따른 어려움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럴수록 마음을 곧게 가지고 최초의 뜻, 즉 믿음을 회의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되돌아 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이것은 천지의 법칙이다.
제는 만남의 의미입니다. 천은 양, 지는 음입니다. 따라서 천지제야 라는 의미는 음양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천지의 법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천지의 법칙, 즉 천지의 운행법칙 이라는 의미로 풀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춘하추동이 반복됩니다. 인간의 화복도 대체로 다시 반복됩니다. 그런 의미로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왕필의 주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훨훨 날듯이 부유해지지 않아도 이웃과(부를) 함께하여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다.
제4효가 상괘의 첫 효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5효와 6효의 효사에서 읽을수 있듯이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하향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시점 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편편은 세력이 분산되고 세가 악화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새들이 흩어지듯 그 세가 약화되는 것은 그 부를 이웃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믿음오로서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 읽어서, 그 세가 약화되는 이유를 짚어보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상향 곡선을 그려온 과정에서 즉 세력이 장성되어온 과정에서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지 않았고 최초의 공명전대했던 뜻 즉 지재외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현상입니다.
소상은 편편불부는 실질을 모두 잃음이요. 불계이부는 중심으로 원함이다. 라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편편불부를 붙여서 읽고 있다는 사실과 불계이부를 긍정적인 의미로 풀이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즉 불계이부는 구태여 경계하지 않아도 믿는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나, 편편불부를 왈필 주에서처럼 훨훨 날듯이 부유해 하지 않아도 라고 읽는다면 그것이 개실실야 즉 모두 잃는다는 뜻과는 상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을이 누이를 시집보냈다. 복되고 크게 길하리라.
제5효는 임금의 자리입니다. 괘 전체를 두량하는 자리입니다.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서 비록 득위는 못했지만 음효의 공능인 유순함과 겸손함이 있어서 크게 길할 것 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크게 길할 것 이라 함은 중 즉 제5효가 행원 곧 소원을 이루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제6효인 상효는 전 과정의 종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이란 글자 그대로 흙을쌓은 것입니다. 평지의 흙을 파서 쌓으면 성이되고 흙을 파낸 자리는 황이 됩니다. 그 구덩이에 물을 채워서 해자를 만들지요. 이제 그 쌓은 흙이 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대를 움직이지 마라. 즉 전쟁을 일으키지 마라는 의미입니다. 자읍고명은 자기의 마을에서만 명을 받든다. 즉 왕명이 널리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정린은 바른 일도 비난받는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대부분의 역사가 드렇고 일생이 그렇고 모든 과정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명령이 통하지 않음이다.
이상으로 지천태의 경과 전을 모두 읽었습니다. 한 개인의 일생 또는 전위조직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또 역지사지와 천지개벽이라는 혁명적 의미로 읽기도 했습니다.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간다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공유하는 광범위한 민주적 지반위에 서야 한다는 것으로 애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단계의 실천은 철저히 대중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읽을수 있으며 조직의 내포를 어떻게 공고히 하고 외연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관련된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를 경계하지 않고 진실로 결속해야 하고 이해관계로 결속하기 보다는 초기의 이념적 목표를 잃지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등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후에 다음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관료주의와 보수적 경향에 대한 경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