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가출 조짐
The Earth Lost in Space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면 가출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동의 없이 나가면 가출이다. 어순으로 보면 '출가'가 맞지만, 속세를 벗어나 불교 수행에 힘쓰는 것을 출가라 한다. 벽을 넘어 번뇌에 얽매인 인연을 끊고 길을 떠나는 출가도 청소년 가출도 쉽지 않다. 철딱서니 없는 나이에 가출하면 범죄를 저지를 확률보다는 범죄를 당할 확률이 높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인신매매, 유흥업소, 폭력조직 등 착취를 당해 평생 지울 수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DS)'를 겪을 수도 있다. 가정 폭력,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견디기 힘든 가정 형편으로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큰 인물이 된 사례도 있다.
우주(Cosmos)란 라틴어로 조화를 뜻한다. 만물은 자기 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지키며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이 우주다. 현재 과학 수준으로 지름 930억 광년인 우주에서 은하계도 티끌 같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지구 마을 사람들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만 연연하다 보니 황폐해졌다. 오죽하면 지구는 거주 불능이라며 화성에 우주 식민지를 세우겠다고 경쟁하겠는가? 남미에서는 겨울이 가출했고 태풍도 갈지자로 방향을 틀었다. 빙하가 녹아 37년 전 산악인의 유해가 스위스에서 드러나고 석기시대 벌레가 깨어났다. 사막에 선인장이 말라 죽는 시대다. 재해 경보 발효와 해제가 일상이다. 지구조차 가출할 조짐이다.
주말에 파푸아 원주민 다큐를 다시 보았다. 300여 부족이 사는 파푸아는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원시의 생명, 태초의 천국, 마녀사냥, 식인종, 마지막 원시' 등 다양한 관점의 다큐가 많다. 원주민 남성 성기의 긴 고깔 모양의 덮개 ‘코테카(Koteka)', 독립기념일 전 부족의 '싱싱' 축제, '와메나와' 전쟁 축제 등도 흥미롭다. 콘텐츠 기획자이자 블루에이지 회장인 김현청의 작품은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부족이지만, 사실적으로 인간적인 면을 다룬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손가락을 절단한다. 자신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라 돈 버는 족족 내어준다. 거절을 못 하는 문화다.
그런데 이제는 전통을 부끄러워하고 불편해한다. 자식의 학비와 생계비를 벌려고 전통 의상을 입고 춤추고, 과한 행동과 소리를 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일상의 삶이 관광 상품으로만 존재한다. 추장이었던 선조의 미라(사체)도 돈 몇 푼에 보여주고 사진을 찍으면 손을 내민다. 선교, 문명, 기술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삶이 애처롭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자연재해 그리고 인간성 상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출처: 月刊김현청 파푸아 이야기 - 화해의 아이, 와해되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