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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진정성을 가지고 2022. 12. 3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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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는 여러분이 잘 알고있는 공자어록 입니다. 노자에는 노자라는 인간이 보이지 않지만 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도처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이 노자와 논어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논어에 공자뿐만 아니라 공자의 여러 제자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매우 친근하게 읽을수 있는 책입니다. 공자 당시에 논어라는 책이 존재 했을리가 없습니다. 후대에 제자들에 의해 학단 차원의 사업으로 편찬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 당시의 정황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공자의 시대는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 입니다. 5천년 중국 역사에서 꼭 중간으로, 중국 사상의 황금기인 소위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사회에 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개진된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회 경제사적의미에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크게보아 춘추전국시대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 에 해당됩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 특유의 광범하고도 혁명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경으로 황무지가 개간되고 심경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급증 하는 등 토지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토지에 대한 관념이 변화 합니다.

  농업 생산력의 증대는 수공업, 상업의 발달로 이어집니다. 여불위 같은 대상인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쟁방식도 변했습니다. 네다섯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청동 창칼로 무장한 귀족들이 싸우는 차전이 평민 병사의 보병전 중심으로 변화 했습니다. 부국강병에 의한 패권 경쟁이 국가 경영의 목표가 되고 침략과 병합이 자행 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적 가치가 붕괴되고 오직 부국 강변이란 하나의 가치로 획일화 되는 시기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으로 질주하는 현대 자본주위의 패권주의적 경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 입니다.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제후, 대부, 사, 서인 이라고 하는 사회의 위계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입니다.

  위계질서의 재편은 먼저 제후와 대부의 강성으로 나타납니다. 천자의 토지 소유권이 제후와 대부에게 넘어가는, 토지 소유권의 하이 현상이 광범하게 일어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주 왕실의 물적 토대의 약화로 이어집니다. 서주의 마지막 임금인 유왕이 왕비 포사의 웃음을 보기위해 거짓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불렀는데첫번째와 두번째 거짓 봉화에는 각지의 제후들이 군대를 이끌고 달려왔지만 막상 서방의 만족이 침범해 왔을때 올린 세번째 봉화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온 제후가 아무도 없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주 왕살의 위급함을 돕기 위해서 달려온 제후 군대가 없다는 것은 그것이 설화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제후와 대부가 그 세력이 강성해 지고 중앙정부로 부터 독립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 왕실은 직할지의 병력과 재원에 의존 할 수 밖에 없게됩니다.낙읍의 주 왕살은 지도력을 읽고 제후와 제후와 대부가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이지요. 이렇게 등장한 수십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다시 전국시대에는 7국으로, 드디어 진나라로 통일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주대의 종범 질서가 진한의 중앙 집권적 관료 국가로 전환되는 사회 재편기입니다.

 

  셋째, 천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주 왕실이 무너지면서 왕실 관학을 담당하던 관료들이 민간으로 분산되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하게 됩니다.이 계층은 민간인 신분으로 강학 활동을 하거나 학파의 출현을 주도하게 됩니다. 공자학파 역시 춘추 말엽에 활동하던 여러 민간학파중의 한 갈래로 분류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위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동기에 부국강병 이라는 국가적 정책목표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조직에 이르기 까지 국력을 극대화 하기위한 모든 노력이 경쟁적으로 경주되는 시기입니다. 패권경쟁을 위한 정치기구의 확충과 전문적지기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정신노동의 상품화가 이루어 지는 시기입니다. 이른바 제자백가의 시대이고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공자의 사설 학숙은 이러한 수요에 부응한 관리 소개소의 성격을 갖는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회 경제적 특징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사회 경제적 배경은 사상사의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도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자와 논어를 논하기 위해서는 비단 춘추전국시대의 사회 경제적 배경만으로 충분할리 가 없습니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바로 유가 사상이고 그 중심이 공자이고 논어입니다. 2천년 동안 쌓아온 공자상은 이미 실증적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곡부에 있는 대성전의 장대하고 화려한 풍경은 공자 당시의 풍경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공자를 빙자 하려는 역대 제왕들이 공자를 금으로 칠해 놓았습니다. 진짜 공자를 만나기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논어와 공자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물도 엄청나게 쌓여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이 우리의 독법을 대단히 어렵게 합니다. 논어의 시대를 정전제를 주장하는 노예주 계급의 복례 노선과 사유제를 주장하는 소인 계급의 변혁 노선이 충돌하는 시기로 파악하고, 공자를 노예주 계급을 변호하는 복고주의자로 규정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논어에 나타나 있는 인과 민의 어법을 면밀히 조사하여 인을 노예주 계급, 민을 노예계급으로 규정하고 공자의 사상은 시종 인 계급 내부의 담론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편 공자사상을 정반대의 관점에서 조명하기도 합니다. 인과 인의 의미는 물론이며 군자와 소인의 개념도 그것을 계급적 틀에 가두지 않고 윤리적 개념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해석함으로서 공자 사상을 만세의 목탁으로 격상 시켜놓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군자라는 제3의 주체를 역사 무대의 전면에 세움으로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2항대립의 물리적대립구도를 3항의 견제 구도로 지양 시켰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공자와 논어의 시대를 둘러싼 논의가 우리들의 독법을 대단히 어렵게 하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시대 지배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 할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 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사상을 기준으로 평가 하는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는 것 이지요. 아리스토텔래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서 인에 대한 담론이든 민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 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시 문안을 읽어가면서 필요한 대목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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