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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Wrong Place, Wrong Time
천안함 폭침과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중간인 4월에는 세월호 10주기 난리다. 이태원 핼로윈도 떠올리게 된다. Gillian McAllister의 2022년 출간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제목이다. 핼로윈 아침 자정, 리버풀의 성공한 변호사 Jen Brotherhood는 18살 아들 Todd의 귀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통금 시간 위반 걱정보다 훨씬 위험한 장면에 압도당했다. 창문을 통해 낯선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을 목격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왜 그렇게 폭력을 썼는지? 아무것도 물랐다. 분명한 한 가지는 자신과 아들의 삶이 산산조각났다는 것뿐이었다. 아들이 구금된 후 절망에 빠져 잠이 든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어제였다. 아직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를 막을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다. 매일 아침 깨어날 때마다 사건 발생, 몇 주,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과거 어딘가에 아들의 끔찍한 범죄를 촉발한 원인을 찾아내고 막는 것이 엄마의 도리였다. 이야기는 그렇게 펼쳐진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3년 BBC 뉴스 내용이다. 9월 17일 뉴욕 거리에서 Jil & Cameron Robertson 부부가 총격당했다. 밴드 공연을 보고 자정 직후 호텔로 가던 중, 남편이 팔과 다리에 총을 맞았다. 아내는 침착했고 도움을 받아 경찰과 구급대원이 곧 현장에 출동했다. 치료를 받은 후 당일로 귀국했다.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시간, 총성이 터졌고 전 그냥 길 한가운데 서 있었을 뿐입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운이 좋아 동맥, 뼈, 신경에 손상도 없었다. 뉴욕 경찰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두 명이 인근을 걷다가 총알을 여러 발 발사했지만 여전히 수색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쏜 사람에 대해 큰 악감정은 없지만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운이 안 좋았다며 뉴욕에 또 휴가를 갈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우연하게 하필이면 그 장소, 그 시간에 있어 불운을 겪은 경우(Wrong Place, Wrong Time), 재수 좋게도 우연히 그 장소, 그 시간에 있어 행운을 엮은 경우(Right Place, Right Time).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된다. 가끔 그런 경험을 하거나 경험담을 듣는다. 17년 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초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나와 사이트를 운영하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친구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아침에 올렸다. 재미 한국인 영문학과 4학년 조승희가 출입문을 잠그고 반자동 권총 두 자루로 174발을 난사해 32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9년 뒤 발생한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 이전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국제적인 언론 보도와 여러 논란이 있었다. 외톨이인 그는 이전에 선택적 함묵증(Selective Mutism)과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아 치료와 특별 교육 지원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버지니아주는 정실 질환자의 총기 구입 규제 조례가 통과되었다.
사망자 중 25명은 학/석/박사 과정 학생으로 18~27세였고, 7명은 교수/강사였다. 한국인이 범인이라고 해서 놀랐다. 현지 한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으로 자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미국 지도층조차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언론도 집단 자책감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인들은 피해자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LA 타임스는 촛불 예배를 여는 등의 과민 반응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의 집단 자책감은 문화적 차이에서 온 것으로 극단적 집단주의라는 비판도 나왔다.
버지니아 공대에는 학교 상징인 화강암 추모석이 만들어지고 교기도 걸렸다. "왼쪽에서 4번째 추모석에는 '2007년 4월 16일 조승희'라고 씌어있고 학생들로 보이는 이름이 적힌 애도 편지가 나란히 놓여있다. "너를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가슴이 미어진다.", "너를 향한 사람들의 가슴 속 분노가 용서로 변하기를...네가 그렇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슬펐단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않는 성숙한 용서의 문화다. 오른쪽 옆에는 "To the Family of Cho, Seung-Hui with Love”라고 쓰인 종이도 있다. 특히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축복을"이란 구절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참조: 2007년 4월 22일~23일 매일경제/경향신문/한국경제/한겨레/문화/중앙일보 등 기사, 뉴스원 2024년 4월 16일 기사 참고). 원수를 사랑하라? 생명은 모두 귀하다. 떠난 이들의 발목을 잡지말고 보내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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