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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벗

진정성을 가지고 2022. 12. 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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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여러분도 알고있는 학이 편에 있는 논어의 첫 구절입니다. 여러가지 번역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구 해석에 관한 몇가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구절에 담겨있는 사회적 의미를 읽어야 합니다. 춘추전국시대가 종래의 종법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기 이전의 과도기 였다는 것은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 우선 눈에 뜁니다. 학습이 그것입니다.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있지만 데체로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의 학습이 적어도 수능시험을 위한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것은 노예제 사회에서는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수기는 물론이며치인도 학습의 대상이 아닙니다.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학습이 갖는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학습에 대한 언급이 논어 첫 구절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 변동기 임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물론 기쁘지 않으랴. 라고 공자 자신의 개인적 심경의 일단을 표현하는 지극히 사적인 형식으로 개진되고 있습니다만, 학습에 대한 언급은 사회 재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예가 다음 구절에도 있습니다. 붕의 개념입니다. 붕은 친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친우라는 것은 수평적 인간관계입니다. 계급사회에는 없는 관계입니다. 같은계급 내 에서는 물론 존재할 수 있습니다만 멀리서 벗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분제를 뛰어넘은 교우에 의미를 두는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붕은 수평적 인간 관계이며 또 뜻을 같이 하거나 적어도 공감대가 있는 인간관계를 의미합니다. 공자의 학숙에는, 초기에는 천사의 자제가 찾아왔으며 후기에는 중사의 자제도 입학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붕의 개념이 등장 한다는 것 역시 사회재편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다는 마지막 구절의 의미입니다. 공자는 식읍을 봉토로 받는 대부가 되기를 원했지만 결국 그러한 신분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녹을 받는 사, 즉 피고용자에 머물수 밖에 없었습니다. 은퇴하여 결국 사설학원 원장으로 일생을 끝마치게 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라는 1인칭 서룰은 물론 공자가 자신의 달관의 일단을 피력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이러한 술회가 공자학단의 역사적 책무에 관한 소명의식을 천명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그러한 달관이 사회적 의미로 읽힐수 있는 어떤 새로운 가치에 대한 언급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것이 습 에 관한 것입니다. 습의 뜻은 그 글자의 모양이 나타내고 있듯이 실천의 의미입니다. 부리가 하얀 어린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입니다 복습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배운것, 자기가 옳다고 공감하는 것을 실천할때 기쁜것 이지요. 논어에는 이곳 이외에도 습을 실천하는 의미로 읽어야 할곳이 더러 있습니다. 같은 학이 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도 잘 알려진 것입니다.

 

  증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세가지를 반성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사람을 위하여 일하되 그것이 진심이었는가를 반성하고, 벗과 사귐에 있어서 불신받을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전불습호가 나옵니다만, 이 경우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성현의 말씀을 복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을수도 있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친다는 뜻으로 읽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전하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행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당시에도 하나의 사회적 유형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장이나 한비자의 책에도 도처에 공리공담을 일삼는 부류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학이시습지의 습은 실천의 의미로 읽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의 의미도 때때로가 아니라 여러조건이 성숙한 적절한 식의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그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often이 아니라 timely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것은 이처럼 사회 변동기에 광범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입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문안을 통해 다시 확인 되겠지만 논어는 인간 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인간관계에 관하여 깊이 논의할수는 없습니다만 사회의 본질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사실만은 여러분과 합의 해 두고 싶은 것이지요.

 

  여러분도 각자 사회에 대하여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집합으로 사회를 이해하기도 하고, 하나의 유기체 또는 건축적 구조로 규정하기도 하고 생산관계, 정치제도, 문화기제, 소통구조등 여러가지 개념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사회에 대한 이 모든 개념은 제도와 인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제도와 인간이라는 두개의 범주가 인간관계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수가 있는 것 이지요. 그런점에서 사회는 인간관계의 지속적 징서라 할수 있으며, 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존재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바로 인간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지요. 사회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 말로 사회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 입니다.

 

  어느분으로 부터 감명깊게 읽을 책을 소개 해 달라는 물음에 자본론과 논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매우 의아해 했습니다. 이 두 책이 너무 이질적인 책 이라는 것이지요.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두 책은 다같이 사회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동질적인 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계급관계는 생산관계이기 이전에 인간관계입니다. 자본제도의 핵심은 위계적인 노동분업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산자에 대한 지배체제가 자본 제도의 핵심 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론은 물론 변혁 이론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 이지만 생산자에 대한 지배권력이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에 의하여 행해지든, 사회주의 사회의 당 관료에 의하여 행해지든 본질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도의 핵심 개념이 바로 인간관계라는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인간 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 말로 정치혁명 또는 경제 혁명이나 제도혁명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 구조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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