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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진정성을 가지고 2022. 12. 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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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가 그것입니다. 연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항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 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 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활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 라고 할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 입니다. 변화를 일으킴으로서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주역에는 사물의 변화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구도가 있으며, 그것이 사물과 사건과 사태에 대한 일종의 범주적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64괘를 칸트의 판단 형식과 같은 철학적 범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범주적 판단 형식은 근본에 있어서 객관적 세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진술형식 이나 최상위의 유개념과 통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장의 전반부에서 잠시 이야기 했다고 기억합니다만 요컨대 주역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역에서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철학적 구도 이외에 매우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 일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절제 사상입니다. 일례로 건위천괘의 상구 효사에 항룔유희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 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자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주역은 변화의 철학 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서 대응할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하므로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고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것과 같습니다.

 

  논의를 불필요하게 확대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루이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작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점에서 과학 이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메트릭스의 세계에 같혀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 에서 주역의 범주는 그것이 판단 형식이든 아니면 객관적 존재에 대한 진술 형식이든  그것이 망라하는 세계는 결과적으로 왜소한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바로 이러한 제한성으로 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해야 합니다. 주역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라는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주역을 마집니다. 대성괘 몇개를 그것도 일부만 읽어보는 것으로 주역을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입니다. 공자의 위편삼절이란 주역을 주고 일컷는 말입니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책이 바로 이 주역입니다. 그만큼 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주역을 읽었다는 뜻 이지요. 물론 당시의 책은 죽간 이기때문에 가죽끈이 쉽게 끊어질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이를 묶었건 대나무 쪽을 묶었건 가죽끈이 세번씩이나 끊어진다는 것은 여간 드문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면서 시 한구절을 소개합니다. 저로서는 주역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은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산대사가 요향산 원적암에 있을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 입니다.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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