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 Independence Hall of Korea)은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자 역사박물관으로,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남화리 230)에 있다.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며, 국민모금을 통하여 1987년 8월 15일 개관했다.
1994년 1월 18일 편의시설 운영 및 용역관리를 목적으로 독립기념관 내에 자회사 (주)독립기념관사업단을 설립했으며, 2011년 독립기념관사업단은 (주)한빛씨에스로 상호명을 변경하였다.
기능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대한 역사자료의 수집, 관리, 전시, 조사, 연구
올바른 국가관 정립을 위한 국민에 대한 역사 교육, 홍보
기념관자료에 관한 홍보와 이에 관한 각종 간행물의 제작 및 배포
기념관 시설의 관리 및 확충 등의 운영재원 조달을 위한 사업
연혁
1982년 10월 5일: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설립
1983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 기공
1986년 5월 9일: 독립기념관법 공포시행
1986년 8월 4일: 겨레의 집 화재로 인해 준공 무기한 연기
1987년 8월 15일: 제42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준공, 개관
2005년 5월 18일: 소관부처 이관 (문화관광부 → 국가보훈처)
2008년 1월 1일: 관람료 무료화
2011년 8월: 누적 관람객 4,000만명 돌파
전시와 시설
전시관: 모두 7개이며, 대공간 · 소공간 · 특별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의 상징이자 중심 기념 홀로, 수덕사 대웅전을 모방해 설계했다.
겨레의 큰마당: 겨레의 집 앞의 광장으로, 중앙부는 화강석 포장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온양판석과 잔디마감으로 되어 있다.
입체영상관: 대한민국 근대사에 관한 4D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통일염원의 동산: 평화 통일과 그 의지를 후세에 전할 교육장으로, 국민의 통일 염원을 벽돌에 새겨 후세에 영구히 보존하고자 국민참여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
겨레의 탑: 높이 52m의 조형물로, 민족의 비상을 표현했다.
불굴의 한국인 상: 겨레의 집 내부 대형홀 중앙에 위치하며, 불굴의 독립정신과 강인한 한국인상을 상징하는 환조이다.
추모의 자리: 독립기념관 상단에 있으며, 애국 선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1995년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철거된 구 조선 총독부 건물의 일부 부재를 가져다 놓았다.
광개토대왕릉비 재현비: 현재 중국에 위치하게 된 광개토대왕릉비를 재현했다. 제1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복제비' 혹은 '모형비', '재현비'로 논란이 되고 있으나[출처 필요] 설명문에는 '재현비'라고 되어 있다.
삼학사비 복제비: 삼학사의 충절을 기릴 목적으로 청 태종이 세웠다가 소실된 뒤 1935년 만주 동포들이 재건립했으나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 때 파손된 비석인 삼학사비를 재현했다.
북관대첩비 복제비: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6년 3월 1일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리(옛 길주)로 반환한 뒤 복제해 세웠다.
태극기한마당: 815기의 태극기를 연중 게양하는 장소이다.
백련못: 인근의 흑성산에서 발원한 물을 유입시킨 26,446m2의 연못이다.
솔숲쉼터: 독립기념관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잔디 광장이다.
밀레니엄 숲: 2000년 개장한 한반도 모양의 숲이다. 새천년의 안정과 번영, 국민의 화합, 통일의 염원을 상징하고자 조성하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기념 식수를 하였다.[7] 4007호 디젤기관차와 11883·11888호 구형 무궁화호 객차로 구성된 '통일열차'가 설치되었다.
3.1전시상: '겨레의 함성'이라 이름 붙은 제4전시관 '함성의 광장' 중심에 있는 청동 조각상.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흰색 페인트로 도색되어 논란이 되었다.
무궁화: 겨레의 집 앞뜰에 무궁화 꽃이 있다.
거북선: 제1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서대문형무소: 제2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민중의 소리: 제3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태화관: 제4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조선총독부: 겨레의 집 뒤에 올라가다보면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뒤 버려진 것이 있다.
1910년 서울 경복궁 (景福宮) 앞뜰에 있던 건축물을 경복궁 복원사업을 실시해 철거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독립기념관에 버려지게 되었다.
현 충 사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06년에 창건하고, 이듬해 ‘顯忠祠’라 사액(賜額)되었다.
그 뒤 일본의 국권 침탈로 돌볼 수 없게 되어 한때 퇴락했으나, 1932년에 이충무공유적보존회(李忠武公遺蹟保存會)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광복 후 1967년 국가에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마쳤다.
경역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 시설로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유물관·고택(古宅)·활터·홍살문(紅―門)·정려(旌閭), 이면(李葂)의 묘소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구본전은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拜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事蹟碑)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 고택은 이순신이 자라난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왔으며,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다.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다.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 1932년 중건 때의 자리에 있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이완(李莞), 4대손 이홍무(李弘茂), 5대손 이봉상(李鳳祥), 효자 이제빈(李悌彬) 등 5인의 편액(扁額)을 보존하고 있다. 이면은 이순신의 셋째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다.
유물관에 전시된 주요 유물로는 『난중일기(亂中日記)』·서간첩(書簡帖)·임진장초(壬辰狀草), 장검(長劒)·옥로(玉鷺)·요대(腰帶)·도배(桃盃),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 : 都督印·令牌·鬼刀·斬刀·督戰旗·紅小令旗·藍小令旗·曲喇叺]·교지(敎旨)·각종 무기·거북선 모형·유적 사진·해전도(海戰圖)·거북선도[龜船圖]·십경도병풍(十景圖屛風)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유물관에 전시된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경상남도 통영시의 충렬사(忠烈祠)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