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평화에 기여하세요
Contribute to Peace
2007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 연주. 노르웨이 셰틸 버커스트랜드(Kjetil Bjerkestrand)가 작곡한 팡파르(Fanfare). 연주자 티네 팅 헬세트(Tine Thing Helseth)는 이 연주를 계기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87년생으로 7살부터 트럼펫을 불었다. 당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공동 수상했다. (유튜브: https://youtu.be/2nPwkb9ZyPQ?si=Vzj6IkADjcGK90mT)
노벨 평화상은 가장 영예롭고 가장 논란이 많은 상이다. 자질이나 선정 여부와 별개로, 추천 자격이 주어진 약 1천 명이 추천한다. 따라서 매년 후보는 수백 명에 이른다. 매년 10월 국회/정부, 국제의회(국회)연맹,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 국제법학회 등의 회원/위원과 역사, 사회과학, 철학, 법학, 신학 교수/부교수/총장, 평화연구/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이전 수상 기관 이사회 구성원, 현/전 노벨 위원회 위원/상임고문 등에게 서한을 보내어 이듬해 2월 1일까지 이유서를 첨부하도록 한다. 후보 범위를 좁혀가며 선별하고 최종 수상자 결정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가 한다. 발표 전까지 수상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후보 명단은 50년 후 공개가 원칙이지만, 추천자가 공개할 수는 있다. 한국 국회가 추천권이 있다면?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독재자 입김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39년 아돌프 히틀러를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브란트(Erik Gottfrid Christian Brandt)가 추천하여 두고 두고 욕을 먹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베니토 무솔리니, 인종청소를 저지른 이오시프 스탈린도 후보에 오른 바 있다. 1988년에는 전두환도 영국, 서독 의회 추천으로 후보에 올랐었다. 모르는 게 약이하고, 독가스로 쿠르드족 학살을 명령했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이 후보로 올랐을 것이라고 죽을 때까지 믿었다. 수상자 결정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고, 취소 처분이 되지 않아 영원히 수상자로 남는다. 수상 후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는 로힝야족의 학살 묵인, 코스타리카의 전 대통령 바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는 성폭행/성추행 폭로가 이어진 바 있다.
2024년 2월 말일 351(개인 259명+단체 92) 적법 추천 중 285명이 평화상 후보로 등록되었다고 발표됐다. 그중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이름을 올렸다. 노르웨이 국회의원 마리우스 닐센(Marius Arion Nilsen)이 "대화와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고 양극화된 세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면서 추천한 것이다. 논란이 분분하다. 노벨상을 제쳐놓으면,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을 선한 마음으로 하고 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결코 실망할 일이 없을 것이다.”
Do everything with good heart and expect nothing in return, and you will never be disappointed.
반응형